
| 제목 | 효행으로 이름을 떨친 부자- 변응우, 변만리를 기리는 정려 - 안동단(安東壇) | ||
| 작성자 | 변성관 [2026-03-18 15:3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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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단(安東壇)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녹원리에 있는 개항기 제단. 1897년(광무 원년) 조선 후기의 장연 변씨 효자 죽포(竹圃) 변응우(邊應宇)[1644~1696]와 아들 오헌(梧軒) 변만리(邊萬里)[1670~1726], 손자 수분당(守分堂) 변진신(邊鎭臣)[1703~1770] 세 명의 효행을 기리고자 유림의 동의를 얻어 제단을 설단하였다. 변응우는 효성이 지극하여 봉양의절에 소홀함이 없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자 단지하여 피을 먹여 수일 동안 연명하게 하였고 상을 당하여 묘막을 치고 3년 동안 배곡하였다. 아버지가 병중에 꿩을 먹고 싶다 하여 정성을 다하며 구하고자 하니 꿩이 마당에 떨어져 꿩탕으로 쾌유하였다고 전한다. ‘대효’로 칭하며 생원 이민기 등이 연명으로 포상을 요청하자 정려를 내렸다. 판서 이정보가 행장을 지었다. 변응우의 아들인 변만리는 용산면 관지리에서 태어나 어버이 섬김에 맛있고 색다른 음식으로 효를 다하였다. 상을 당하여 시묘 3년을 하여 장흥 유생들이 장계를 올려 1753년 효행 사실이 조정에 주달되었다. 변만리의 아들인 변진신은 지촌 이희조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문필을 갖추었고 삼연 김창흡, 풍서 이민보 등과 종유하였다. 부모를 섬김에 지극한 효를 다하였다. 이처럼 조자손 3대 효행을 기리고자 시묘하던 터에 설단하고 향사를 하였다. 안동단(安東壇)은 전라남도 장흥군 용산면 녹원리 녹동마을에 있다. 안동단은 1897년 설단하였다고 하나 1957년으로 표기한 기록도 있다. 안동단은 제단 형태이고, 재실 모선재(慕先齋)는 목조 건물이다. 모선재는 정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동단의 재실에는 ‘효자학생변응우지문(孝子學生邊應宇之門)’ 효자 편액이 걸려 있다. 이규보가 교지를 받들어 글씨를 썼다. 마을 입구에는 ‘관지리 효자 학생 변응우지문 정려비’가 있었다. 판서 이정보가 비문을 지었고 변진신이 1762년(영조 38) 글씨를 썼다. 관지리 효자 학생 변응우지문 정려비는 원래 녹원리에 있던 것을 관지리로 옮겼다. 안동단은 조선 후기 효자 3대를 기리는 제단이며, 유교 정신을 실천한 현장 유산으로서 중요하고 향촌 사회사적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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