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족보족보 서문
족보 서문
제목 을묘년(1795년)에 발행된 족보 서문
작성자 변성관 [2026-01-18 18:19:32]
첨부파일
첨부된파일갯수 : 0

                                              을묘년(1795년)에 발행된 족보 서문

 

  우리 변씨의 유래는 오래 되었다. 그 유래가 위로는 '황제'로부터이니 '공손'이 그 성이었고 '헌원'으로 씨(역자 주석 : 과거에는 성과 씨가 달랐으며 씨는 요즈음의 본관과 비슷한 개념이었다.)로 삼았다. '소호'는 '금천'을 씨로 삼았고 '극교' 때에 와서는 따로 칭하는 씨명이 없었다.  '제곡' 때에 와서는 '고신'을 씨로 삼았으며 '계' 때에 이르러서는 처음으로 자성(역자 주: 상나라 즉 고대 중국의 은나라 왕실에서 사용하던 대표적인 성씨임)을 받았으며 상나라에 봉해졌다. 13세대가 흘러 '천을'에 이르니 이 분이 은나라의 제왕이시다. 그 후 27세가 지나 '미자계'에 이르러서는 송나라의 군주로 봉해졌다.  송공 미자계로부터 20세대가 지나, '어융'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었는데 그의 자가 '자변'이라서 그 자손들이 '변'으로 성을 삼고 대대로 농서지방(현재 중국의 감숙성 안에 있는 지역의 명칭)에 근거를 두었다.

   (역자 주: 돌아가신 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높여 부를 때 쓰는 이름이라는 뜻의 말)가 '경'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송나라 조정에서 벼슬을 하였고 그의 아들인 '중량'과 손자인 '연'이 모두 벼슬이 병부의 평장사 반열에 이르렀다. 4세인 '유녕'이 관서지방으로부터 공주(원나라의 공주)를 모시는 신하로 고려에 와서 벼슬을 하여 장연군에 봉해져 장연 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아들 '언경'부터 7세손 '귀수'에 이르렀는데, 고려의 국운이 다하여 두문동에 은둔하였으니 그 호가 죽강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하였고 문음(역자 주: 높은 벼슬을 한 조상의 후손에게 과거를 통하지 않고 벼슬을 내리던 제도)의 혜택을 누렸으나, 여러 차례 전란을 거치며 가문의 족보를 자세히 알 길이 없게 되었다. 이에 단지 부인이 누구인지는 아나, 그 부인의 네 조상(역자 주: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일컬어 사조라고 한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거나, 묘소가 있는 곳의 위치는 알고 있으나, 그 묘소의 좌향(망자의 묘가 향하는 방향)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일족 간에 지켜야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조상의 묘를 살피는 예를 다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안타까움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12세 조상이신 수정선생께서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셨고, 아들 감사공과 손자 현감공 교리공에 이르는 3대의 분묘가 모두 파주 조리동에 모셔져 있으나, 경기 지방까지 길이 멀고 강산이 험해 일 년에 한 번 향화(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 피우는 향)를 올리는 정성조차 행하기 어려우니 서쪽 하늘을 우러르니 울적함만 더해 갈 따름이다. 9세조이신 생원공의 묘가 있는 산이 고양에 있다고만 써있고 어느 산 무슨 좌향인지 기록되어있지 않아 비록 성묘를 하고자 하여도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8세조이신 별제공께서 안의(경상북도의 한 지방의 지명)에 살기 시작하고 7세조이신 도탄선생께서 남원으로 옮겨와 산 지도 거의 2백여 년이나 지났다. 3대에 걸쳐 문음의 혜택을 입은 일은 한없는 은혜이며, 4대가 선비들에게 제향(서원 등지에 모셔 제사를 올림)을 받음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근세에 이르러 가문이 기울고 복운이 부족하여 고관대작을 배출하지는 못하였으나, 불초한 후손들이 시문을 익히고 예법을 지켰으니 이는 가문의 명망이 아직 땅에까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종족이 장흥과 안의, 그리고 남원 등지에 산재하여 산천이 막고 길이 멀어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같은 겨레끼리 우의를 돈독히 하는 모임을 갖기는 어렵지만 그 뿌리는 하나이니 선대에 이룬 업적을 깊이 생각해보면, 혹은 충효로써 세상에 이름을 떨쳤고, 혹은 문장과 학문를 가문에 전해왔으니, 조야(조정과 재야의 인사들)가 높이 우러러보고 존중하였다. 오호라. 우리 가문의 후손된 이들이 이러한 조상들의 뜻을 체득하여 스스로를 닦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대대로 힘써 애쓴다면 우리의 가문이 옛 명망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내 나이를 돌아보니 60이 가까워 언제 생을 마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번 왕조 아래 안팎의 장연 변가의 계파들과 여러 세대에 걸친 자취를 모아 족보를 만들어서 남쪽 지방으로 내려와 살게 된 후의 각처에 있는 분묘를 기록함으로써 조상을 흠모하는 정성스런 마음을 여기에 담고자 한다.

   

 

    지금의 임금님(정조) 재위 19년 을묘 년(1795년) 음력 2월 상순에 불초한 자손 광하가 삼가 기록한다.

 

현대어 번역 : 변성관 

 

 

이전글 ...
다음글 ...